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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11.12 죽음을 주머니에 넣고
  2. 2014.11.15 부코스키

죽음을 주머니에 넣고

91년 9월 12일


경마가 없는 날. 정상이라는 느낌이 드는 게 묘하다. 헤밍웨이에게 투우가 필요했던 까닭을 난 안다.

그에게 투우는 삶이라는 그림을 끼울 액자 같은 것으로, 자기가 어디에서 뭘 하고 있는지를 일깨워주었으리라.

때때로 그걸 우린 잊어버린다. 기름 값을 지불하고 엔진오일을 교환하는 등등에 정신이 팔려서. 


대다수 사람들은 죽음에 대한 준비가 없다, 제 자신의 죽음이건 남의 죽음이건. 

사람들에게 죽음은 충격이고 공포다. 뜻밖의 엄청난 사건 같다. 옘병, 

어디 그래서 되겠나. 난 죽음을 왼쪽 주머니에 넣고 다닌다. 때때로 꺼내서 말을 건다. 

"이봐, 자기, 어찌 지내? 언제 날 데리러 올 거야? 준비하고 있을게."


꽃이 피어나는 것이 애도할 일이 아니듯, 죽음도 애도할 일이 아니다. 

끔찍한 건 죽음이 아니라 인간들이 죽기까지 살아가는 삶, 또는 살아보지 못하는 삶이다. 

인간들은 제 삶을 소중히 여기지 않고, 제 삶에 오줌을 싸댄다. 

제 삶을 똥 싸갈기듯 허비한다. 멍청한 씨댕이들, 


그들은 씹질, 영화, 돈, 가족, 그리고 또 씹질, 따위에 너무 몰입한다. 그들 머릿속엔 솜만 꽉 찼다. 

그들은 하느님을 아무 생각 없이 꿀꺽 삼키고, 국가도 아무 생각 없이 꿀꺽 삼킨다. 

그러다 금방 그들은 생각하는 법마저 잊어버리고, 생각도 남들이 대신 하라고 내맡긴다. 골통엔 솜만 꽉 찼다.  

그들은 생긴 것도 추하고, 말하는 것도 추하고, 걷는 것도 추하다. 

수세기 만에 한 번 나올 법한 위대한 음악을 틀어줘도 들을 줄을 모른다. 

대다수 인간들의 죽음은 짝퉁이다. 죽을 게 남아 있어야 말이지.



91년 10월 9일


날 차에 태워 끌고 가던 FBI 녀석들이 골을 내던 게 기억난다. 

"야 이 친구 제법 쿨한데!" 

한 녀석이 성질이 나서 버럭 소릴 질렀다. 

내가 왜 붙잡혔는지, 날 어디로 끌고 가는지 난 묻지 않았던 것이다. 


난 그냥 어찌 되든 상관없었다. 의미 없는 인생의 그저 또 다른 단면이었을 뿐. 


"잠깐," 내가 말했다. "난 무섭소." 

그 말에 그들은 기분이 좀 좋아지는 듯했다. 

그들은 내게 외계인 같았다. 우린 서로 관계 맺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상했다. 난 아무 느낌도 없었으니까. 

뭐, 딱히 이상하다고 내가 느꼈다는 게 아니라, 일반적인 의미에서 이상했다는 거다. 


난 그저 손들, 발들, 머리들을 보고 있을 따름이었다. 그들은 무언가 이미 마음을 정했고, 난 그들의 처분만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난 정의나 논리 따윈 기대하지 않았다. 그런 게 내 차지가 된 적은 없었다. 

저들이 무슨 수를 써본들 전체 구조는 결코 의미 있는 것으로 변하지 않을거다. 

아무 것도 없는데 뭘로 좋은 걸 만들어낼 수 있겠는가. 

그 자들은 내가 겁내는 꼴을 보고 싶었던 거다. 그들에겐 그게 익숙하니까. 

난 그저 넌더리가 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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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코스키


그때 난 동거중인 여자가 있긴 했지만 그 여자도 집에 없을 때가 많아 나도 외로운 편이었다. 내 옆에 서 있는 큰 엉덩이 때문이라도 외로웠다.


조이스는 마침내 달팽이를 삼켰다. 그러더니 접시에 담긴 다른 것들도 찬찬히 살폈다.

'모두 작은 똥구멍이 달렸어! 끔찍해! 끔찍하다고!'

'똥구멍이 뭐가 끔찍해?'

조이스는 냅킨을 입에 갖다 댔다. 그녀는 일어나더니 화장실로 달려갔다. 조이스는 구역질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부엌에서 화장실에 대고 소리쳤다.


'똥구멍이 뭐가 나쁘냐고! 당신한테도 똥구멍은 있잖아. 나도 똥구멍이 있다고! 가게에 가서 큼지막한 쇠고기 스테이크를 하나 사봐. 거기도 똥구멍은 달렸어! 지구상에는 똥구멍이 널렸단 말이야! 어떤 면에서는 나무들도 똥구멍이 달렸는데 못 찾는 것뿐이야. 나무들도 이파리를 싸잖아. 당신 똥구멍, 내 똥구멍, 세상에는 수십억 개의 똥구멍으로 가득 찼어. 대통령도 똥구멍이 있고, 세차장 직원들도  똥구멍이 있어. 판사들도 살인자들도 똥구멍이 있다고. 심지어 자주색 넥타이핀 남자도 똥구멍은 있어!'

'아 그만해. 그만하란 말이야!'

그녀는 다시 구역질을 했다. 시골 촌년. 나는 사케를 따서 한 잔 마셨다.


나는 웃었다. 슬픈 웃음이었다. 그건 인정해야지. 하지만 나도 모르게 나왔다.

'이거 맞히기 쉽네. 하지만 당신은 그자하고도 원만하지 못할 거야. 행운을 빌어. 당신의 이런저런 점 때문에 내가 당신을 사랑했다는 것 알고 있을거야. 단지 돈 때문이 아니고.'

조이스는 베개에 얼굴을 묻고 울음을 터뜨렸다. 엎드린 채로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그저 촌년, 응석받이로 자라서 불안정한 애일 뿐이었다. 저기서 아무런 가식 없이 몸을 부르르 떨면서 울고 있었다.

베티는 아이가 둘 있었지만, 둘 다 베티를 찾아오는 법이 없었고 편지를 보낸 적도 없었다. 베티는 이제 싸구려 호텔의 청소부였다. 처음 베티를 만났을 때 그녀는 비싼 옷을 입고 있었고 날씬한 발목에 비싼 구두를 신고 있었다. 몸매가 탄탄했고 아름답다고 할 만했다. 눈은 야성적이었다. 잘 웃었다. 부자 남편을 만났다가 이혼했는데, 그는 음주 운전을 하다 교통사고로 죽어서 코네티컷에서 화장되었다. <저 여자를 길들일 순 없을 거야.> 사람들은 내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그런데 그녀는 지금 저 꼴이었다.

신부는 맨날 하는 소리를 읊었다. 나는 듣지 않았다. 관이 있었다. 과거에 베티였던 존재가 그 안에 있었다. 아주 더웠다. 해가 지면서 노란 침대보처럼 빛이 깔렸다. 파리 한 마리가 빙빙 돌았다. 반쪽짜리 장례식이 반쯤 지났을 때 작업복을 입은 두 남자가 내 화환을 들고 왔다. 장미는 시들어 있었다. 더위 속에서 시들어, 시들었고, 시들고 있었다. 그들은 그 물건을 가까운 나무에 기대 놓았다. 장례 미사가 거의 끝나갈 때 호환이 앞으로 기울더니 철퍼덕 엎어졌다. 아무도 세우지 않았다. 그때 미사가 끝났다. 나는 신부에게로 가서 악수를 했다. '고맙습니다.' 그는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 미소짓는 사람이 둘이 되었다. 신부와 마샤. 오는 길에 래리가 다시 말했다. '묘석은 어떻게 할지 편지를 쓸게요.' 나는 아직도 그 편지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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