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주머니에 넣고

91년 9월 12일


경마가 없는 날. 정상이라는 느낌이 드는 게 묘하다. 헤밍웨이에게 투우가 필요했던 까닭을 난 안다.

그에게 투우는 삶이라는 그림을 끼울 액자 같은 것으로, 자기가 어디에서 뭘 하고 있는지를 일깨워주었으리라.

때때로 그걸 우린 잊어버린다. 기름 값을 지불하고 엔진오일을 교환하는 등등에 정신이 팔려서. 


대다수 사람들은 죽음에 대한 준비가 없다, 제 자신의 죽음이건 남의 죽음이건. 

사람들에게 죽음은 충격이고 공포다. 뜻밖의 엄청난 사건 같다. 옘병, 

어디 그래서 되겠나. 난 죽음을 왼쪽 주머니에 넣고 다닌다. 때때로 꺼내서 말을 건다. 

"이봐, 자기, 어찌 지내? 언제 날 데리러 올 거야? 준비하고 있을게."


꽃이 피어나는 것이 애도할 일이 아니듯, 죽음도 애도할 일이 아니다. 

끔찍한 건 죽음이 아니라 인간들이 죽기까지 살아가는 삶, 또는 살아보지 못하는 삶이다. 

인간들은 제 삶을 소중히 여기지 않고, 제 삶에 오줌을 싸댄다. 

제 삶을 똥 싸갈기듯 허비한다. 멍청한 씨댕이들, 


그들은 씹질, 영화, 돈, 가족, 그리고 또 씹질, 따위에 너무 몰입한다. 그들 머릿속엔 솜만 꽉 찼다. 

그들은 하느님을 아무 생각 없이 꿀꺽 삼키고, 국가도 아무 생각 없이 꿀꺽 삼킨다. 

그러다 금방 그들은 생각하는 법마저 잊어버리고, 생각도 남들이 대신 하라고 내맡긴다. 골통엔 솜만 꽉 찼다.  

그들은 생긴 것도 추하고, 말하는 것도 추하고, 걷는 것도 추하다. 

수세기 만에 한 번 나올 법한 위대한 음악을 틀어줘도 들을 줄을 모른다. 

대다수 인간들의 죽음은 짝퉁이다. 죽을 게 남아 있어야 말이지.



91년 10월 9일


날 차에 태워 끌고 가던 FBI 녀석들이 골을 내던 게 기억난다. 

"야 이 친구 제법 쿨한데!" 

한 녀석이 성질이 나서 버럭 소릴 질렀다. 

내가 왜 붙잡혔는지, 날 어디로 끌고 가는지 난 묻지 않았던 것이다. 


난 그냥 어찌 되든 상관없었다. 의미 없는 인생의 그저 또 다른 단면이었을 뿐. 


"잠깐," 내가 말했다. "난 무섭소." 

그 말에 그들은 기분이 좀 좋아지는 듯했다. 

그들은 내게 외계인 같았다. 우린 서로 관계 맺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상했다. 난 아무 느낌도 없었으니까. 

뭐, 딱히 이상하다고 내가 느꼈다는 게 아니라, 일반적인 의미에서 이상했다는 거다. 


난 그저 손들, 발들, 머리들을 보고 있을 따름이었다. 그들은 무언가 이미 마음을 정했고, 난 그들의 처분만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난 정의나 논리 따윈 기대하지 않았다. 그런 게 내 차지가 된 적은 없었다. 

저들이 무슨 수를 써본들 전체 구조는 결코 의미 있는 것으로 변하지 않을거다. 

아무 것도 없는데 뭘로 좋은 걸 만들어낼 수 있겠는가. 

그 자들은 내가 겁내는 꼴을 보고 싶었던 거다. 그들에겐 그게 익숙하니까. 

난 그저 넌더리가 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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