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

 

아무것도 중요한 것은 없다. 나는 그 까닭을 알고 있다. 그도 그 까닭을 알고 있는 것이다. 내가 살아온 이 부조리한 생애 전체에 걸쳐, 내 미래의 저 밑바닥으로부터 항시 한 줄기 어두운 바람이, 아직도 오지 않은 세월을 거쳐서 내게로 불어 올라오고 있다. 내가 살고 있는, 더 실감난달 것도 없는 세월 속에서 나에게 주어지는 것은 모두 다, 그 바람이 불고 지나가면서 서로 아무 차이가 없는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거다. 다른 사람들의 죽음, 어머니의 사랑, 그런 것이 내게 무슨 중요성이 있단 말인가? 그의 그 하느님, 사람들이 선택하는 삶, 사람들이 선택하는 숙명, 그런것이 내게 무슨 중요성이 있단 말인가? 오직 하나의 숙명만이 나를 택하도록 되어 있고, 더불어 그처럼 나의 형제라고 하는 수많은 특권을 가진 사람들도 택하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알아듣겠는가? 사람은 누구나 다 특권을 가지고 있다. 특권을 가진 사람들밖에는 없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도 또한 장차 사형을 선고받을 것이다. 그 역시 사형을 선고받을 것이다. 그가 살인범으로 고발되었으면서 어머니의 장례식 때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형을 받게 된들 그것이 무슨 중요성이 있다는 말인가? 살라마노의 개나 그의 마누라나 그 가치를 따지면 매한가지다. 자동인형 같은 그 작은 여자도, 마송과 결혼한 그 파리 여자도 마찬가지로, 또 나와 결혼을 하고 싶어 하던 마리나 마찬가지로 죄인인 것이다. 셀레스트는 레이몽보다 낫지만, 셀레스트와도 마찬가지로 레이몽도 나의 친구라고 한들 그것이 무슨 중요성이 있단 말인가? 마리가 오늘 어떤 새로운 뫼르소에게 입술을 내준다해서 그것이 어떻다는 말인가? 이해하느냐고, 이 사형수를, 그리고 내 미래의 저 밑바닥으로부터..... 이런 모든 것을 외쳐대며, 나는 숨이 막혔다. 그러나 벌써 사람들이 사제를 내 손아귀에서 떼어내고 간수들이 나를 위협했다. 그러나 사제는 그들을 진정시키고, 잠시 묵묵히 나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히 괴어 있었다. 그는 마침내 돌아서서 사라졌다.

 그가 나가버린 뒤에, 나의 마음은 다시 가라앉았다. 나는 기진맥진해서 침상 위에 몸을 던졌다. 그러고는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왜냐하면 눈을 뜨자 얼굴 위에 별이 보였기 때문이다. 들판의 소리들이 나에게까지 올라왔다. 밤 냄새, 흙냄새, 소금 냄새가 관자놀이를 시원하게 해주었다. 잠든 그 여름의 그 희한한 평화가 밀물처럼 내 속으로 흘러들었다. 그때 밤의 저 끝에서 뱃고동 소리가 울렸다. 그것은 이제 나에게 영원히 관계가 없게 된 한 세계로의 출발을 알리고 있었다. 참으로 오래간만에 처음으로 나는 엄마를 생각했다. 그녀가 왜 인생이 다 끝나갈 때 '약혼자'를 가졌는지, 왜 생애를 다시 시작해보는 모험을 했는지 나는 이애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거기, 뭇 생명들이 꺼져가는 그 양로원 근처 거기에서도, 저녁은 우수가 잠시 머무는 휴식시간 같았었다. 그처럼 죽음 가까이에서 엄마는 해방감을 느꼈고, 모든 것을 다시 살아볼 마음이 내켰을 것임에 틀림없다. 아무도 그녀의 죽음을 슬퍼할 권리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나도 또한 모든 것을 다시 살아갈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느꼈다. 마치 그 커다란 분노가 내게서 악을 몰아내고 희망을 비워 주기라도 한 듯이, 징조들과 별들이 가득한 이 밤을 마주해서, 나는 처음으로 세계의 다정한 무관심에 마음을 열었다. 세계가 그토록 나와 닮았고, 마침내 그토록 형제같이 느껴지자, 나는 행복했었고, 여전히 행복하다고 느꼈다. 모든 것이 완성되기 위해서, 내가 외로움을 덜 느끼기 위해서, 내게 남은 바람은, 내가 처형되는 날 많은 구경꾼들이 와서 증오의 함성으로 나를 맞이해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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