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 10월 4일


 전 세계의 제도와 조직은 인류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우리는 필요에 의해 다양한 물질적 조직을 만들었다. 전쟁과 민주주의, 독재정치 그리고 종교적 제도, 모두 각자의 목적을 가지고 지속되어 왔다. 사람들은 이것들을 우러러 보며 외면적 또는 내면적으로 도움을 받고 싶어한다. 욱신대는 내면의 상처와 시간의 그림자, 아득한 생각까지 모두 말이다. 아주 오래전부터 수많은 종류의 제도가 있었지만 그 어떤 것도 인간의 내면을 바꾸지 못했다. 제도는 절대 인간을 근본적으로 또 정신적으로 바꿀 수 없다. 그럼에도 왜 인간이 이런 제도를 만들어내 도움 받고 싶어 하며 오랫동안 지속되는 안정감을 추구하는 이유에 대해 사람들은 이상할 만큼 궁금해 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서로 대립하는 더 많은 제도와 조직을 만들어내고 있다.


왜 우리는 예민함이라는 몹시 연약한 감각을 점점 잃어가는 것일까? 문제와 혼란뿐 아니라 우리에 관한 모든 예민함 말이다. 어떤 특정한 것에 대한 예민함이 아닌 그저 세심해지는 것. 예민해진다는 것은 특별한 것이 아니다. 고작 며칠 전에 태어났지만 폭풍우와 비, 어둠, 그리고 빛에 맞서야 하는 어린 나뭇잎처럼 연약해지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연약해졌을 때 상처받는다. 상처를 안고 스스로 뒤로 물러나 주위에 벽을 짓고 단단하고 또 잔인해진다. 하지만 우리가 이런 추악하고 잔인한 반응 없이 모든 움직임과 세상에 연약해질 때, 후회와 상처, 스스로를 강요하는 훈육 없이 세심해질 때, 비로소 측정 불가능한 존재의 자질을 가질 수 있다.우리는 이런 연약함을 소음과 잔인함, 천박함 그리고 하루하루의 혼잡함으로 가득한 세상 속에서 잃어버린다. 

'주워온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1983. 3. 10 목요일  (0) 2014.11.12
이방인  (0) 2014.04.02
날개  (0) 2014.03.01
1983 3월 18일 금요일  (0) 2014.02.22
사랑과 섹스에 관한 단상  (0) 2014.0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