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것으로부터의자유


나에게 여러분을 가르칠 만한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실재에 이르는 새로운 철학도, 새로운 체계도, 새로운 통로도 없습니다. 진리로 가는 통로가 없듯이 실재에 이르는 통로도 없습니다. 모든 권위는 어떠한 종류라도, 특히 사고와 이해의 분야에서는 가장 파괴적이며 사악한 것입니다. 지도자들은 추종자들을 파멸시키고 추종자들은 지도자들을 파멸시킵니다. 여러분은 자신의 스승이 되어야 하며 또한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인간이 가치 있는 것으로, 필요한 것으로 받아들였던 모든 것들에 대해 의문을 던져야 합니다.

 

여러분이 누군가를 따르지 않는다면 외롭다고 느끼겠지요. 그렇다면 외로워 보십시오. 왜 외로운 것을 무서워합니까? 그 이유는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을 대면하고서 자신이 공허하고 둔하며, 어리석고 추하며, 죄 많고 그리고 불안하고 엉뚱하며, 겉만 번지르르한 구닥다리 실체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사실을 직면하십시오. 도망치지 마십시오. 도망치는 순간 두려움이 시작됩니다.


왜 우리는 실제적인 사실로부터 도피하려 하는 것일까요? 우리들은 죽음을 두려워하며, 그래서 죽음이라는 사실을 위장하기 위해 별의별 이론, 희망, 신념들을 발명해냅니다. 그러나 사실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사실을 이해하려면, 우리는 그로부터 도피하지 말고 그것을 직시하는 것입니다. 우리들 대부분은 죽는 것은 물론 사는 것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가족을 위해서 두려워하고, 여론을 두려워하고, 일자리를 잃지 않을까, 안정과 그 외에 수백가지 것들을 두려워합니다. 단순한 사실은 우리가 두려워한다는 것이지, 두려움의 대상이 이것이나 저것이냐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그러한 사실을 직면하지 못할까요? 오직 현재 속에서만 어떤 사실을 직면할 수 있는데, 항상 그것을 회피하기 때문에 그것이 눈앞에 있도록 결코 허용하지 않는다면, 여러부은 결코 그것을 직면할 수 없습니다. 또 우리들은 전반적인 도피의 조직망을 배양해 놓았기 때문에 도피의 습성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여러분이 조금이라도 감수성을 갖고, 조금이라도 진지하다면 자신의 제약 상태를 알게 될 뿐만 아니라 그것이 초래하는 위험, 그것이 어떤 잔인성과 증오감으로 이끄는가를 인식하게 될 것입니다. 자신이 받는 제약의 위험성을 알게 되었다면 왜 행동하지 못합니까? 게을러서, 즉 에너지가 없어서인가요? 그러나 만일 길을 가다가 뱀을 만나거나 낭떠러지, 화재 같은 육체적 위험을 느낀다면 에너지가 결핍되지는 않을 것 입니다. 그렇다면 제약에 대한 위험을 볼 때는 왜 그걿게 행동하지 못합니까? 민족주의가 자신의 안전에 위험이 된다는 것을 알았다면 왜 행동하지 않는 것인가요?


대답은 여러분이 그 점을 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지적인 분석과정을 통해서 민족주의가 자멸로 이끈다는 것을 알 수 도 있지만 그 속에는 감성적인 알맹이가 없습니다. 감성적인 알맹이가 있을 때에만 여러분은 활기차게 됩니다.


폭력은 단지 다른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날카로운 말을 쓸 때, 어떤 사람을 무시하는 몸짓을 할 때, 두려움이 있기 때문에 복종할 때 나타나는 폭력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폭력은 신의 이름으로, 사회나 나라의 이름으로 수행하는 조직화된 살해가 아닙니다. 폭력은 훨씬 더 미묘하고 훨씬 더 심층적입니다. 여러분이 스스로를 인도인 또는 무슬림 또는 기독교인 또는 유럽인, 또는 다른 어떤 사람이라고 부를 때, 여러분은 폭력적이 됩니다. 왜 그것이 폭력적인지 아십니까? 스스로를 나머지 인류로부터 분리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스스로를 신앙에 의하여, 국적에 의하여, 전통에 의하여 분리시킬 때, 그것은 폭력을 낳습니다. 그래서 폭력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어떤 나라에도, 어떤 종교에도, 어떤 정당이나 분파적인 체제에도 속하지 않습니다. 그는 인류의 총체적 이해에 관심을 둡니다.


폭력의 가장 일반적인 표현 가운데 하나는 화내는 것입니다. 내 아내나 누이를 공격하면서 우리는 내가 정당하게 화를 낸다고 말합니다. 내 나라가, 내 생각들이, 내 원칙들이, 내 생활 방식이 공격받을 때, 화내는 것이 정당합니다. 나는 또한 내 습성이나 나의 사소한 견해들이 공격당할 때 화가 납니다. 누가 내 발가락을 밟거나 나를 모욕할 때 화를 내고, 또는 누가 나의 아내와 달아나서 내가 질투할 때 그 질투는 올바른 것이라고 말하는데, 그 이유는 아내가 내 소유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화는 도덕적으로 정당화됩니다. 또 내 나라를 위해 누군가를 죽이는 일 또한 정당화됩니다. 우리가 폭력의 일부인 화에 대해서 이야기할대 우리가 우리 자신의 취향과 환경적인 추셍 따라서 정당하거나 정당하지 않은 화로 나누어서 화를 말하면서 화를 바라봅니까, 아니면 우리가 오직 화만을 봅니까?  올바른 화라는 것이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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